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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성 기자 기사입력  2019/06/24 [18:43]
명사와의 인터뷰"김한창 전주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 겸 공공노총 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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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22일 토요일 오전에 편의점에서 아이스커피를 한잔씩 사서 말 그대로 평화로운 여름 햇살을 만끽하며 목포에서 제도권 정치에 도전하고 있는 목포정치인 김한창 교수(현 전주대 행정학과)를 만나 목포정치의 방향에 대해서 인터뷰를 나눴다.

 

Q. 안녕하십니까? 우선 김한창 박사님에 대한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A. 크게 학자적 정체성 반 정치인 정체성 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체성이 섞이면서 행동가적 정체성은 정반합 이론처럼 자연스럽게 형성이 된 것이구요. 현 직함을 보면 전주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는 학자적 업무이고 정당인으로서 역할은 정치적 정체성입니다.

 

여기에 현장지향의 행동가적 정체성으로는 공공노총 정책연구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과거의 행적 역시 동국대학교(서울캠퍼스) 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 등 행정학 박사로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지속해왔구요.

 

정치적 활동으로는 2007년 대통합 민주신당 대통령 김두관 예비후보의 단독부대변인을 맡았고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 인재영입위원회(위원장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서 기획팀장을 맡아 활동했었습니다.

 

당시에 인재영입위원회에서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하셨던 분들 중에 문재인 후보님의 지지의사를 표방하신 분들을 국가비전위원회라고 해서 모셨는데 이 관리업무도 제가 실무를 맡았고 실무단장도 제가 추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7년에는 문재인 대통령 예비후보 시절 직접적 지지활동을 했던 더불어 포럼 소속으로 ‘더불어청년기업가네트워크’를 이끌면서 역할을 했고, 문재인 대통령 후보께서 예비가 아닌 정식 민주당 후보가 되셔서는 당 내부의 국민통합위원회의 호남전략단장으로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한명숙 총리께서 서울시장에 출마하셨을 때, 조직특보라든지 제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숱한 정치적 활동은 16대 국회를 기점으로 현장정치 경험은 20년이 훌쩍 넘은 것 같습니다. 조그만 더 말씀을 못드렸지만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상근전문위원으로 전임자문위원으로 청렴정책총괄과와 부패영향분석과에서 청렴정책에 다뤄본 경험도 있습니다.

 

또 (사)좋은정책포럼(이사장 임혁백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겸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의 사무총장으로서 국가학술연구용역과 개헌토론회 등 국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실천적 학술활동들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Q. 말씀을 듣다보니, 숨가쁘게 살아오셨고 정치적 행보를 계속해오셨는데 목포에서도 이미 두 차례 제도권 정치에 도전을 한 바 있으십니다. 목포에서의 정치적 활동은 시작하게 된 배경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A. 저는 초등학교 시절, 2학년 때로 기억을 하는데 장래희망을 적어내라고 했을 때, 정치인이 되겠다는 희망을 적은 뒤로 한번도 꿈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목포삼학초등학교-영흥중학교-문태고등학교 12년 동안 반장을 해오면 친구들에게도 정치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학자로서의 정체성도 정치적 철학과 사상을 그리고 실무적 차원을 학습하고 훈련하기 위해서 박사학위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포를 기점으로 한 목포정치를 생각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선거일정에 따라 정치도전은 저는 숙명처럼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했을 뿐입니다. 목포를 기반으로 한 호남정치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를 한번도 제 나름의 정치로드맵에서 수정해 본적이 없습니다.      

 

Q. 목포정치를 줄곧 생각해 오셨다는데, 목포정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제가 생각하는 목포정치는 우선 김대중 정신의 계승입니다. 헌데 저는 김대중 정신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성인들은 가장 낮은데서 임하셨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도 낮은데서 태어나셨고 여러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도 서민을 위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위한 정치를 지향하셨습니다. 목포정치는 고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낮은데로 임하는 정치가 탄생한 곳입니다.

 

그렇다면 목포정치 즉 김대중 정신의 계승은 정치적으로 목포의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고 호남의 그늘진 곳을 생각하는 정치의 기반위에서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이끌어 가게하는 호남정치의 정신적 영양분을 계속 공급해주는 의무가 있는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호남정치의 정신적 영양분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혁신적이며 소외된 비주류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정치를 몸소 실천해 보여주고 결국 소외되고 힘든 분들의 지지를 엮어내어 승리해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비주류임을 저도 알고 목포시민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목포에서 정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Q. 그렇다면 기존의 목포정치, 즉 목포의 지역구 대표인 박지원 국회의원은 정치는 어떤 정치라고 생각하십니까?

 

A. 박지원 국회의원님께서는 저희 후배들이 본받을 만한 많은 정치인의 역량을 가지고 계십니다. 부지런하고 근면하고 성실함은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사업도 하셔서 그 상인정신은 시기를 놓치지 않는 빠르고 유행에 민감한 정치를 여전히 구사하고 계신 것으로 평가됩니다.

 

제가 「한국의 대통령들」과 「한국의 장관들」을 저술한 소장학자이면서도 감히 박지원 국회의원님을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저는 목포정치현장에서의 이해당사자로서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기에 평가를 한다는 것이 적절치 않을 것입니다.

 

굳이 한다면 고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대한민국 건국 50년 만에 최초의 여아가 바뀌는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위업을 민주당에서 이룸으로써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당은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포정치 역시 민주당의 뿌리 속에서 굵은 가지로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민주당과 김대중 대통령님과 함께 하신 분이 민주당을 나와서 정당을 만들고 대선에서 새로운 대통령 후보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의 정치에 빠지셨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민주당을 탈당해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일련의 일들을 과연 지지하셨을까 하는 질문을 기준으로 삼아보자는 것으로 저에게 있어서는 사적으로 30년 문태고등학교 대선배님이식도 하신 박지원 국회의원님에 대한 평가를 갈음해야 하겠습니다.

 

Q. 이제 장시간 말씀주신 인터뷰의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는데요. 목포정치에 대한 개인적 견해와 현재 박지원 국회의원의 목포정치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는데요. 미래의 목포정치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앞서 제 견해를 말씀 드린대로 목포정치는 지역적으로 줄곧 소외받아온 호남정치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역량이 부족해서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고 목포를 공공성의 산실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공공정책연구원을 설립하겠다고 공약하고 실제 실천적으로 운영한 바 있습니다.

 

이런 저의 몸부림들이 소외된 사람들을 아우르고 그늘진 곳을 보듬는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 목포정치를 하기 위한 제 나름의 노력이었습니다. 여전히 저의 소신은 유효합니다. 소외받는 분들도 행복한 삶이 영위되는 모범도시를 만드는 것이 미래의 목포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계승은 이제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매를 맺듯이 이제 열매를 맺어가는 목포정치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민들이 윤택해지고 목포의 정치적 자산을 경제적 가치로 주민들의 자본으로 전환시켜서 윤택한 삶의 질을 담보해낼 수 있는 정치로 업그레이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래의 목포정치는 Al시대에서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가 김대중 정신이 계승되고 시대에 맞춰 진화된 목포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역시나 정치영역에서부터 소외되고 비주류적 삶을 이해하는 돕고자 했던 실천적 삶을 살아온 이들이 목포정치의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제도권에 진입을 하신다면 어떤 정치적 로드맵을 갖고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A. 오히려 그 말씀을 해주시니 가족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목포 삼학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어릴 적 정치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이래로 한번도 꿈을 바꾸지 않은 채 지금까지 도전을 해오고 있지만 그 동안 제가 경험하고 밥벌이를 하는 수단들도 일종의 다 정치수업으로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제가 유치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만 아내와 결혼할 때, 프로포즈 대신에 정치를 하겠다고 고백을 하였고 결혼을 하면서 금융권 직장을 다니던 아내에게 공무원 시험을 강요한 것도 정치를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여전히 비밀이지만 제가 믿는 신앙 속에서 영남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사법고시에 합격도 했고 영남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란 사람을 아내로 맞이해서 20여년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를 하면서 실은 의식적으로 영남의 정치인을 위해 도울려고 애를 썼습니다. 목포에서 정치를 할려고 하기에 제도권 진입이 되었을 때, 저의 가장 값진 젊은 날의 시간을 영남의 정치인을 위해 희생한 증거를 갖고 싶은 사심이 있었습니다.

 

제도권 정치를 하게 될 때에 영남에서도 당당한 호남의 정치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에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약세후보면서 의미가 있었던 김두관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예비후보를 단독부대변인으로서 도왔고 문재인 현 대통령님은 2012년부터 대선캠프부터 당내에서 그리고 외곽조직에 이르기까지 계속 응원해왔습니다.

 

  저는 목포수협과 신안수협에서 근무하시던 아버님이 신안군 수협이 만들어지면서 소장으로 가시게 되었지만 부하직원의 횡령으로 그 돈을 다 배상하고 결과적으로 소송을 7년을 해오면서 집안사정이 매우 어렵게 되어졌습니다. 제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기였던지라 겉으로는 의연했지만 맘속으로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 중학교 3학년때 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200점 만점에 그래도 180~190점은 맞았던 것으로 기억은 합니다. 결과적으로 대학교 역시 전기 대학에 낙방하고 후기종합대인 전주대 행정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이때 저는 저 나름대로 호남의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 전북과 인연을 맺어두는 것도 좋은 저의 전략이라고 당시에도 판단을 했습니다. 이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 행정학과 석사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행정학과 박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포에서 정치를 시작해서 호남을 소외그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고자 지금껏 준비해왔습니다. 목포의 정치인은 운명적으로 호남을 대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목포를 김대중 가치의 계승은 정치적 모범의 도시에서 경제적 모범의 도시로 탈바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가치를 자산으로 밑천삼아 아시아의 심장도시로서 탈바꿈을 지향한다면 경제도시로서 충분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 구체적 공약들에 대해서 일부는 지난 총선에서 투자이민지구 지정 등 많이 발표한 바 있지만 기회가 되면 또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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